서울세계무용축제x무용역사기록학회 공동기획 ‘Reconnect History Ⅱ: 각선의 약동’ 리서치 퍼포먼스 작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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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역사기록학회는 최근 몇 년간 무용계에서 이론과 실기를 조화 또는 융합시키는 질문을 탐색하고 실천하는 리서치 퍼포먼스로 주목받고 있다. 탈북무용가 대상 다큐멘터리 퍼포먼스 ‘몸의 이주’(2021), 신민요춤의 재현복원공연 ‘신민요춤의 재발견’(2021), 도큐먼트 퍼포먼스 ‘Reconnect History’(2022), 전통춤의 리서치안무 ‘코리아그라피’(2023)가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2023년 ‘Reconnect History Ⅱ’는 학회의 리서치 퍼포먼스 최신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공연에는 일련의 리서치공연을 기획한 창작감독 최해리와 작년 ‘Reconnect History’에 함께했던 연출가 김재리, 드라마투르그 정혜정이 또다시 창제작팀을 이루었다. 나는 이번 창제작팀에 처음 합류했고, 전체 과정의 아카이브와 리서치 전시를 담당하기로 했다. 이 지면을 빌려 아카이브 차원에서 그간의 작업 과정을 되돌아보고, 작업 과정에서 떠오른 리서치 퍼포먼스의 몇 가지 이슈를 짚어보고자 한다.
<매일신보> 1932년11월27일 7면
올해의 ‘Reconnect History Ⅱ: 각선의 약동’(이하 ‘Reconnect History Ⅱ’)는 작년의 ‘Reconnect History: Here I am’과 마찬가지로 춤역사의 새로운 쓰기 방식을 탐구하고 있지만, 탐구 대상을 1920-50년대 영상 사료에 집중한다는 점이 새로운 포인트이다. 이 영상 사료라는 기획 포인트는 여러 가지 점에서 ‘Reconnect History Ⅱ’의 작업 방향을 견인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의외의 방향에서 그러했다. 희귀한 역사적 영상자료들은 우리가 무용사를 활자로 배우면서 알았던 것들 이외의 새로운 정보들을 드러내는 동시에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은 것들을 숨겼다. 창제작팀의 의도는 그런 자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출발하면서도 그것에 맹목적으로 홀리지 않는, 그래서 역사쓰기의 복잡한 성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이는 ‘비판적 역사학’의 경향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참여 안무가, 관객, 무용계가 기존 무용사 연구에서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던 춤, 공연, 인물들을 다시 바라보며, 무용사 담론의 기존 질서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 창제작팀은 선행 오리엔테이션에서 ‘영상’과 ‘유희’라는 존재를 두고, 예술춤으로 여기지 않았던 춤형식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play-놀이-재생하기”라는 창작키워드를 추출하였다. 이는 과거를 ‘재생(play)’하지만, 과거와의 ‘놀이’로써 현재를 구상한다는 의미였다. 이런 점에서 일제강점기라는 시기는 특별했다. 옛것과 새로운 것이 어울려 요동치고, 암울할 것 같지만 열정적으로 미쳐있던 그 시기는 우리가 함께 놀아보기에 정말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열정의 시대로 돌아가서 신문기사를 탐색했고, 그 과정에서 ‘각선의 약동’을 발견하였다. ‘각선의 약동’이라니! 이렇게 생소하고 엉뚱한 표현이 당시 조선의 땅에서 최신 유행이었던 고전발레공연을 홍보하는 문구였다는 점이 우리가 과거와 함께 놀이하는 방식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참여하는 안무가들이 과거와 놀고(play), 재생하고(replay), 상호작용하면서(interplay), 발견되는 삐걱대는(misplay) 순간들에 집중하기 원했다.
이영철 <시공간의 융합: 조택원의 <만종을 보고>의 21세기 변주곡> 사진_ 박상윤
전개
언제나 그렇듯 실행은 계획보다 훨씬 극적으로 전개된다. 안무가들과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하면서 수많은 변수와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실제 비용과 예산의 한계로 계획을 번복하는 것은 늘 있던 일이라서 대수롭지 않았으나 참여자의 건강과 시간이 한계로 작용할 때 창제작팀은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비용 불충분으로 아카이브 전시는 전면 취소되고, 대신 창작 콘셉트와 리서치 맥락을 제공하는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다. 영상 제작계획은 저작권과 활용비라는 암초를 만나 흔들렸다. 우리가 찾은 영상자료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던 기관에서 학회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유료 공연이므로 무상으로 제공할 수 없다며 건당 비용을 책정했다. 10여 건이 넘는 자료 활용비의 총합은 학회가 감내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상의 대부분을 신문 자료로 채우게 되었다.
영상자료를 탐색하며 인상 깊었던 한 가지는 처음 의도와는 달리 참조한 영상자료가 의외로 무용사에서 중요한 춤을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20세기 초에 카메라라는 생산도구와 기술을 가진 쪽은 힘이 있는 사람들이고, 역사쓰기의 서술자와 마찬가지의 포지션에 있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승희나 조택원 같은 당시 무용계의 ‘빅 네임’(주요 인물)들이 촬영된 자료가 상당했고, 승무나 검무 그리고 궁중무용과 같이 무용사에서 중요한 춤이 또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길거리에서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놀며 춤추는 장면이 사실은 설정된 것이라는 영상매체 전문가의 설명도 놀라웠다. 당시 촬영자의 대부분이 조선을 방문한 외지인들이라는 사실도 영상자료를 읽는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함을 일깨워주었다. 찍히는 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요 가사처럼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재밌게 찍혔을까? 등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안영환 <밤보다 아침에 가까운 미래> 사진_ 박상윤
창제작팀은 여러 차례의 협업 경험을 통해 서로의 작업 스타일에 빠르게 적응해갔지만, 안무가들과의 소통, 협력 리서치, 그리고 실제 춤으로 구현하는 과정은 매 순간 긴장되고 새로웠다.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끊임없이 내 움직임을 조율해야 하는 ‘접촉즉흥’처럼 느껴졌다. 이번에 참여한 다섯 명의 안무가 김경은, 김형민, 서고은, 안영환, 이영철은 한국춤, 발레, 현대무 등 각자 다른 장르의 춤을 기반으로 하고, 다양한 경력을 거쳤으며, 모두 ‘공연,’ ‘안무,’ ‘리서치’에 대한 개념이 각자 정립된 전문가들이다. 이들의 작업을 아울러서 하나의 공연으로 엮어내야 하는 창제작팀, 특히 연출가의 역할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었다. 반대로 안무가로서는 자신이 익숙한 방식,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리서치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틀에 맞추어야 하고, 창제작팀과 타협해야 하는 수고가 따르니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의 안무 또는 학회의 리서치 퍼포먼스라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했다. 리서치를 퍼포먼스보다는 연구논문으로 써내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 이것은 학술지 편집자와 투고자 사이에 오가는 프로세스처럼 보였다. 해외 학술지의 경우 특히 더 그렇지만, 편집자와 거의 같이 글을 쓴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은 수정을 요구받으며, 지난한 수정의 과정을 거친다. 이것을 간섭이나 방해로 생각한다면 짜증이 날 뿐이다. 왜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싶어 화가 치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논문도 퍼포먼스도 관객과의 소통을 최종 목적으로 한다면, 그중 한 명의 관객, 특히 그 분야의 전문가인 연출자나 편집자로부터 세심한 의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김형민 <(바람) 사이의 기록: 기록의 메카니즘에 대하여> 사진_ 박상윤
한데 이런 긴밀하고 적극적인 협업은 서로의 기여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브레인스토밍에서부터 최종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창제작팀과 안무팀 모두가 공동으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며 공연이 준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공연을 재공연한다면, 또는 작업과정을 실행논문(practice based research)으로 투고한다면, 이 리서치 자료는 내가 발견한 것인가? 이 동작이나 구성은 내가 짠 것인가? 이 아이디어는 누구의 영향을 받아서 나왔는가? 등 여러 가지 사항들에 숙고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춤의 소유권 혹은 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배려와 인정으로 건강한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갈등과 분쟁을 방지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하다. 초연과 기여도에 대한 정확한 크레딧 표기(공연)와 사사표기(논문)이다.
공연
‘Reconnect History II: 각선의 약동’은 9월 5일과 6일에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무용역사기록학회와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시댄스(SIDance)의 공동주관으로 올려졌다. 작년 ‘Reconnect History’와 달라진 것 중 눈에 띄는 점은 장소이다. 2022년에는 문화비축기지 파빌리온에서 공연되었다. 올해 공연한 서강대학교 메리홀은 극장 설비가 잘 갖추어진 전형적인 블랙박스 씨어터이다. 극장에서의 리서치 퍼포먼스는 작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과정보다는 결과물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극장의 관습과 이데올로기적이라 말할 수 있는 극장의 역사가 이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과 공연자의 기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리서치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형식을 깊이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관람한 사람들에게 연구로서 그리고 수행으로서의 춤이 잘 이해되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조명, 음향 등 좋은 설비로 가동되는 극장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은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결과물을 기대하기 때문에 때로는 불안정하고 모순된 놀이의 탐색 과정을 드러내려는 최초 의도가 잘 구현했는지도 의문이다.
서고은 <이것은 역사가 아니다> 사진_ 박상윤
또 한 가지 작년과 달랐던 것은 아티스트와의 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토크가 별 의미가 없다는데 모두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의 소통이 거론되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공연의 시공간적 틀을 벗어난 소통의 기회는 구현되지 않았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장소가 준 한계라고 생각된다.
평가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참여자들이 준비과정만큼이나 공연과정 자체에서 많은 리서치와 발견을 이루었다는 것도 이 공연이 완결이 아닌 과정으로 인식될 수 있는 좋은 지점인 것 같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으로 왔던 지인들의 의견을 개인적으로 들어봤다. 역사쓰기를 가지고 놀아보려는 새로운 비판적 시도가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난해하고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리서치에 방점이 찍혔다면 리서치의 색깔이 더 확실하게 드러나도록 관객들을 이해시키는 장치들이 더 필요했다는 조언도 들었다. 많은 텍스트가 동반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예술적인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설명이라기보다는 기호로 느껴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리서치 퍼포먼스는 어느 정도까지 설명적이어야 할까? 정답은 없지만 “예술이니까 그냥 보고 느껴라”라는 태도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고, 퍼포먼스의 모든 부분이 논리적으로 전개되도록 노력했던 연출자의 작업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입장에서는 궁금증이 더 많아지는 지점이다.
김경은 <얼굴없는 승무> 사진_ 박상윤
공연이 끝난 열흘 후에 있었던 자체 평가회에서는 자축과 자아비판이 공존했다. 모두가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가능하면 워크숍이 선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다들 바빠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인정했다. 또한, 장소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이 작업을 갤러리에서 다시 전시와 토크로 연장해 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무용계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받는 무용역사기록학회의 리서치 퍼포먼스 작업이 단지 새로움에만 머물지 않고, 그 필요성을 공감 받고 확장되는 차원으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글_ 김수인(무용이론가, 무용역사기록학회 공동편집위원장)
사진제공_ 서울세계무용축제 사무국/ 무용역사기록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