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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SN : 2383-5214 ㅣ eISSN : 2733-4279

무용역사기록학 , Vol.55 (2019)
pp.245~274

DOI : 10.26861/sddh.2019.55.245

조선후기 궁중 연회용 처용무 변화에 대한 연구

이종숙

(세계민족무용연구소 공동연구원)

이 연구는 조선후기 궁중 연회에서 연행된 <처용무(處容舞)>의 춤과 반주음악의 변화 양상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수행되었다. 연구 방법은 조선후기 연회와 관련한 문헌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살펴서<처용무>의 변화 양상과 원인을 찾아 제시하는 것이다. 2013년에 발표된 김은자의 「철종대 처용무 연구」를 기초한 후속연구를 진행하였다. 조선후기 연회용 <처용무>의 변화는 조선전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였는데, 가장 큰 변화는 음악에서 비롯되었고, 음악과 더불어 <처용무>의 춤 내용과 구성에도 괄목할만한 변화가 발생했다. 『악학궤범홀기』 <처용무> 반주음악은 춤 도입에 <여민락>, 춤 전개에 <영산회상=향당교주> 만․중․급기, <정읍급기>와 그 창가, 그리고 <북전급기>와 그 창가가 연행되었다. 마지막 퇴장에는 <영산회상> 반주의 본사찬, 미타찬 창가가 연주되었다. 『악학궤범』과 『악학궤범홀기』 <처용무>의 음악을 비교하여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후대에 <여민락>이 도입음악으로 추가되었고, <봉황음>은 <영산회상> 조곡 중에서선택적으로 대체되었으며, <삼진작>이 누락되었다. <처용가>도 노래불리지 않게 되었다. 철종조 <처용무>에서는 춤 전개에 <향당교주>보다는 <여민락령>이 주로 연주된 점이 특징이자 큰변화이다. 또 향악의 창가인 <정읍 급기>와 <북전 급기> 대신에 당악정재의 창사 <미후사>가 노래된점도 큰 변화이다. 한편, 『악학궤범홀기와 정사년 『무도홀기』 춤 부분의 변화를 비교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은자의 연구 결과처럼 회무 → 일렬제행 → 오방 → 일렬제행 → 회무로 진행되는 큰 틀은 유사하지만, 춤의 내용과 형태는 크게 변화하였다. 둘째, 정사년 『무도홀기』는 도입 부분의 설명이 가장 자세하다. 반면 춤전개 부분은 오히려 생략된 춤이 많다. 셋째, 『악학궤범홀기』에는 <정읍급기>, <북전급기>와퇴장할 때의 <영산회상>에 각각의 고유한 창사가 있었다. 그러나 정사년 『무도홀기』에는 <미후사>가이들 가곡(歌曲) 부분을 대신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정사년 진찬의가 특히 대왕대비의 생신과 왕대비의오순경축 행사였던 만큼,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보허자령>의 <미후사> 노래가 여기들에 의해 창해졌을것으로 보았다. 넷째, 『악학궤범홀기』에는 중요 춤 부분인 오방작대를 행할 때 <영산회상>이 주요 악곡이었다. 그런데 정사년 『무도홀기』에서는 <여민락령>이 <처용무>의 중요 반주곡으로 사용되었다. 음악의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연구 결과 <처용무>의 조선말기 70여 년간의 기록부재를 이유로 계승의 단절을 주장했던 선행연구는 오류였음을 밝혔다. 또 조선후기 『의궤(儀軌)』나 『홀기(笏記)』의 정재반주음악으로 많은 비중을 갖는 <향당교주(鄕唐交奏)>는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임을 정리하였다.

A Study on the Changes in Performances of Cheoyongmu for Royal Banquets in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Lee, Jong Sook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changes in dance moves and accompanying music of Cheoyongmu(處容舞) that had been performed at royal banquets during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To do so, the researcher examines documents related to banquets during the period in order to observe how and why Cheoyongmu had changed over time. As such, it is a follow-up study to the “Study of Cheoyongmu during the Reign of King Cheoljong(哲 宗)”. The research outcomes prove a previous argument wrong, which claims that succession of Cheoyongmu was severed on the basis of the absence of related records for seven decades in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Another finding is that Hyangdanggyoju(鄕唐交奏), which appears with great frequency as an accompanying music in Euigue(儀軌) and Holgi(笏 記) during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was in fact Youngsanhoesang(靈山會上). The analysis suggests that changes of Cheoyongmu for royal banquets during the period were widely different from changes in the early period of Joseon Dynasty. Specifically, the most pronounced change came from music. Contents and organization of dance moves also underwent changes, and above all, the song, Cheoyongga(處容歌), was not performed in banquet rituals during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These findings are expected to lay down basic information to illuminate more accurate history of Cheoyongmu for the future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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